기억을 몰아넣는 공부, 잠 못 드는 뇌의 소화불량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는 다다익선일까, 과유불급일까?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적당히 공부하라는 말은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핀잔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침자율학습,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여기에 학원 심야교습까지 고등학생들의 일과는 공부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엔 다다익선은 드물고 과유불급은 흔하다. 밥도 적당히 먹어야 맛도 있고 몸에도 좋지, 너무 많이 먹으면 소화불량에 걸리고 건강을 해친다. 공부도 무조건 많이만 한다고 해서 잘하게 되진 않는다.
물론,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이 대체로 성적도 좋아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종교시설이 많은 도시에는 범죄도 많다. 종교가 범죄를 부추기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에는 종교시설도 범죄도 많을 뿐이다. 공부량과 학업 성취도 사이에도 비슷한 착시 현상이 존재할 수 있다. 학생의 공부에 대한 흥미나 능력, 공부법, 가정환경 등에 따라 공부량도 달라지고 학업 성취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내려면 다른 조건들을 통제한 상태에서 공부량만 조절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을 해보아야 한다.
필사적 되뇌기의 절망적 효과
심리학자 글렌버그(Glenberg)와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에게 여러 단어를 정해진 시간 동안 되뇌게 했다. 만약 되뇌기가 기억에 도움에 된다면, 사람들은 오래 되뇐 단어를 잘 기억하고 잠깐 되뇐 단어는 잘 기억하지 못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험 결과 다른 단어보다 9배나 오래 되뇐 단어도 기억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1)
일상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화번호를 중얼중얼 되뇌면서 전화를 하러 가다가 잠깐 다른 생각이 들면 전화번호는 기억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건 머리가 나쁘거나 건망증이 심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지식이 ‘굳는’ 데엔 시간이 필요해
정보가 장기기억에 저장되는 것은 작업기억과 다른 원리를 따른다. 뇌는 서로 연결된 수많은 신경세포들로 이뤄져 있다. 지식은 이 신경세포들의 연결 패턴을 통해 저장된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면 신경세포의 연결 패턴이 바뀐다. 이 변화 과정을 응고화(consolidation)라고 한다.
응고화를 방해하면 정보가 장기기억에 잘 저장되지 않는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항생제인 아니소마이신(anisomycin)은 체내에 머무르는 동안 응고화에 필요한 단백질 합성을 막는다. 쥐에게 훈련을 시키고 이 약을 바로 주사하면, 훈련한 내용을 잊어버린다. 훈련하고 시간이 충분히 지나서 약을 주사하거나, 약의 성분이 사라진 다음에 훈련을 하면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3)
단어들을 공부하면 신경세포들의 연결 패턴이 천천히 변하면서 응고화가 이뤄진다. 이 때 다른 공부나 또는 머리 쓰는 일을 하면 응고화가 방해 받는다. 그래서 앞서 공부한 단어들에 대한 기억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렇게 뒤이은 학습이 앞선 학습한 지식의 기억을 손상시키는 것을 후행 간섭(proactive interference)이라 한다. 공부한 내용이나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공부한 뒤 보통 10분에서 1시간 정도 쉬어야 기억이 충분히 굳어져서 이런 간섭이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 학생들은 공부도 많이 하지만 잠도 적게 잔다. 예전에는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고 해서 “네 시간 자면 붙고,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도 있었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제일 짧고,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것 역시 공부에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약 먹고 공부 잘하겠다는 독자도 있을 텐데, 그냥 잠을 푹 자면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니 부질없는 짓이다. 게다가 자는 동안 일어난 일을 잘 기억 못하듯이 이 약을 먹은 뒤엔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므로 약 먹고 공부 잘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확실히 한국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조사(PISA)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비효율적이기도 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핀란드 학생들은 하루 평균 6시간 6분, 일본 학생들도 하루 평균 5시간 20분 정도만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학업성취도에서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무조건 공부량을 늘린다고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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